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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목문중 세거비 세우다
작성자 박노식 작성일 2008.11.04
파일 사진DSC04627.JPG 사진DSC04635.JPG 사진DSC04659.JPG 사진DSC04672.JPG 사진DSC04696.JPG 사진DSC04698.JPG 사진DSC04640.JPG 사진DSC04645.JPG 조회수 14389

  코스모스 향기 듬뿍 스민 갈바람에 괴당정 뜰에서 야목문중 세거비 제막식을 11월 2일 가졌습니다.

  후손들과 문객, 귀빈 등 백여명이 참석하셨으며 제막식에 앞서 조상님께 제막식을 알리는 제례도 올렸습니다.

  훈식씨 사회로 경과보고, 주손인사, 비문낭독, 추진위원장 인사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국화향기를 맡으며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문중이 화합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주손 노인씨는 인사말에서 정자를 보수하고 세거비를 세우게 되어서 기쁘지만 그보다 더 시대의 변천으로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희박해져가는 이때 문중이 힘을 합하여 무었인가 이루었다는데 더 큰뜻을 갖게 되었고 이일을 통해 볼 때 우리문중은 더욱화합하고 번성하리라는 확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래에 저가 지은 비문과 제막식 광경을 오립니다.

  야목 문중을 축하해 주십시오

  야목문중  노식  배 

 

                                                  세거비문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는 開天節 歌詞와 같이 영해박씨의 血系는 一世 朴赫居世王, 二世 南解王, 三世 儒理王이고 유리왕은 長子 婆娑王(파사왕)과 次子 逸聖王(일성왕)을 두셨으며 寧海朴氏는 長子 파사왕의 혈계인 바 모든 朴氏의 長子 혈계이다.

  寧海朴氏의 始宗祖 휘 堤上 호 觀雪堂은 始祖 박혁거세왕의 九世孫이며 신라 내물왕 西紀 三百六十三年에 탄생하셨다.

   눌지왕이 고구려에 볼모로 있는 복호와 왜국에 볼모로 있는 미사흔 두 아우를 늘 그리워하자 관설당께서 왕을 설득하여 복호와 함께 신라로 돌아왔고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왜군에게 붙잡혀 문초를 당하실 때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을 것이며 계림의 매를 맞을지언정 왜국이 주는 재물로 부귀를 누리지 않겠다.’고 하여 火刑으로 돌아가셨다. 王은 대아찬을 추증하고 丹陽君을 봉하시고 충열공의 시호를 내리셨다. 또한 子 휘 文良할아버지는 부귀영화가 뒤 따랐지만 헌 신짝처럼 버리시고 거문고 하나를 안고 찬 바람이 이는 쓰러져가는 집에서 거문고를 벗하였으며 백군데나 지은 옷을 입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아서 百結先生이라 불리었고 방아타령으로 유명하다.  三十四世 휘 命天할아버지는 전법판서 삼중대광 벽상공신으로 자금어대를 下賜받고 예원군에 책봉되었다. 현종조에 예원(영해)의 貫鄕을 받아 그후부터 후손들이 관향을 寧海로 사용하게 되었다. 四十二世 世通, 四十三世 洪茂, 四十四世 瑊 삼대에 걸쳐 문하시중평장사(정승)를 배출한 가문으로 왕께서는 공로를 기리어 洞民들에게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居無役이란 동명을 붙여주셨다. 삼정승의 墓는 영덕군 영해면 영동에 있으며 保谷齊舍가 있고 雲溪書院이 있다.

  四十七世 휘 球 돈옹공은 안동임하 북쪽 기사리에 터를 잡으셨고 운봉감무, 병마단연판관을 지내셨으며 할아버지의 후손인 野牧 사람들은 돈옹공파에 속한다.

  六十世 弘運할아버지는 休榦, 英榦, 義榦, 喆榦 四兄弟를 두셨는데 그중 英榦, 義榦 형제분이 이곳 奉花郡 鳳城面 金峯 野牧의 입향조이시다. 英榦할아버지의 墓는 금봉리 육송정에 있으며, 손자 휘 基泰 호 埜戺公은 舊學에 通達하여 후진양성에 힘쓰시어 많은 제자를 길러내셨다. 저서로는 繫啓條解, 야사유고 등을 남겼고 墓는 금봉리 玉谷에 있다. 義榦할아버지는 正廟己亥生 安東추산에서 태어나셔서 이곳 野牧으로 이주하셨으며 辛丑 六月二十七日 卒 墓는 금봉리 葛田(갈부자리)에 있다. 슬하에 履煥, 漸煥, 鼎煥, 泰煥 四兄弟를 두셨다.

   義榦할아버지의 손자 휘 基萬 호 梧山齋 할아버지는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이 출중하셨으며 高宗朝 正三品 通政大夫 셨고 墓는 금봉리 팥밭골에 있다. 증손자 휘 性欽 호 槐塘亭할아버지는 高宗朝 將仕郞 莊陵叅奉을 지내셨고 墓는 괴당정 서쪽에 있다. 生前에 온화한 성품과 厚德仁慈하셔서 괴당정에서 후학을 가르치는데 남다르게 정성을 쏟으셨다.

  回顧 해 보건데 後孫이 繁盛하고 人心이 厚德한 것은 祖上의 은덕이라, 祖上의 崇高한 情神을 이어받아 崇祖孝親과 相互敦睦 하여 門中의 和合과 繁盛을 期待해 본다.

  입향조께서 새 터전을 이루신지 二百여년이 지난 지금 늦으나마 後孫들이 合心하여 할아버님의 高貴한 자취를 한조각의 돌에 세겨 괴당정 뜰에 우뚝 세워 길이 後孫에 傳하고자 한다.


                    西紀 二千八年 五月

                     後孫  老植 謹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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