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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렬공 박제상
작성자 박준식 (소설가) 작성일 2020.04.02
파일 조회수 203







충렬공 박제상(朴堤上363~419)



충신이며 철학자요 천문학자인 박제상



                                                혜목 박준식(소설가)



박제상이 충신이라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 충신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박제상공이 충신의 사표(師表)가 되었을까요.



삼국시대에 일본은 신라를 수시로 침범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적국이었습니다. 그런 적국에 볼모로 잡혀 있는 왕자(미사흔, 내물왕의 셋째아들)를 어떻게 구해올 수 있을까? 일본에 가서 '왕자'의 말만 꺼내도, 아니 일본 땅에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목이 달아날 긴장된 관계에서 말입니다.  



여기서 박제상공이 뛰어난 지략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공은 신라의 눌지왕에게 자신을 역모를 꾀한 반역자로 전국에 포고령을 내리고 부인과 가족은 모두 감옥에 가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신라를 배신한 역적이 되어 쫓기는 신분으로 위장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역적이 되었기에 가족을 만날 수도 없는 공은 김철복(金轍復)이라는 수행원 한 명만 데리고 율포에서 작은 목선에 올랐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달려온 부인에게 손만 흔들어 주고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후 일본의 한적한 포구에 배를 댄 공은 김철복에게 ‘나는 죽을 것을 각오하고 왔으니 걱정이 없는데 둘이 죽을 이유는 없다. 그러니 나를 잊고 멀리 가라’며 김철복을 떨쳐내고 혼자 일본군 진영으로 들어가 포로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왕은 인교오(允恭)라는 천황이었는데 그는, 신라에서 역적으로 몰려 쫓기고 있다는 공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라의 정세를 염탐하러 와 있던 왜병이, 공의 가족이 모두 감옥에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일본에 전했고, 그제야 공을 믿기 시작한 왜왕은 공을 후하게 대접하고 곁에 두며 가까이 지냈습니다. 신라를 침범할 때 공을 향도(鄕道)로 이용할 속셈이었습니다.

왜왕의 신임을 얻은 공은 왜왕이 있는 궁에 거주하며 볼모로 잡혀 있는 왕자를 자주 만날 수 있었었습니다. 공은 왜왕에게, 자신은 낚시를 잘하니 근처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다 드리겠다고 허락을 받은 후 왕자를 데리고 수시로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다 왜왕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공의 목적은 왜왕에게 고기를 잡아다 바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왕자를 바닷가로 데리고 나간 공은 왕자에게 노를 젓는 법, 하늘의 별을 보고 신라 쪽 방향을 아는 법, 몇 시간을 가면 신라가 나오는지 그런 것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일찍이 천문학을 수학하고 천체의 이치를 깨달은 공입니다. 하늘을 보고 바다가 잔잔해질 날을 택한 공은 그날도 고기를 잡으러 간다며 일본 감시병을 속이고 포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수행원으로 와서 일본에 머물고 있던 강구려(康句麗)라는 신라 사람을 불러서 왕자와 같이 배에 태웠습니다.



여기서 공의 충절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충신이든 우선은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왕자와 같이 배를 타고 신라로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은, 둘이 다 없어진 것을 알면 일본군이 바로 추격해 올 것이고 그러면 다시 잡혀서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같이 가자고 하는 왕자의 말을 거절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이 궁으로 돌아오고 조금 있으니 일본군 병사가 왕자를 찾았습니다. 이에 공은,‘왕자께서는 어제부터 낚시를 무리하게 하시어 몸이 안 좋아 잠들어 계십니다. 조금 있다가 제가 깨워서 모시고 가겠습니다.’하고 일본군 병사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군 병사가 다시 공을 찾아왔을 때, 그때는 왕자가 이미 신라에 도착했을 시간이었습니다. 공은, 자신은 신라의 사신으로 왕자를 구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왜왕은 펄쩍 뛰었습니다. 대일본제국의 천황이라고 자처하는 자신을 속이고 왕자까지 빼앗아갔으니 울분이 솟구쳤습니다. 왜왕은 공의 발바닥 가죽을 벗긴 후 대나무밭으로 끌고 다니며 고통을 가했고, 벌겋게 달군 철판 위에 세워놓고 ‘너는 내 신하가 아니었느냐.’며 고문했습니다. 이에 공은‘나는 신라 사람이며 신라 왕의 신하’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왜왕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공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갈량 뺨치는 지략이 있고 충절이 하늘을 찌르는 공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신하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왜왕은 공을 목도로 유배시키고 며칠 있다가 다시 찾아가서 자신의 부하가 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다시 회유했습니다. 이에 공은.‘신라(계림)에 가서 개가 될지언정 왜놈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했습니다. 왜왕은 그 자리에서 공을 화형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불에 타고 남은 유골의 목을 잘랐다고 합니다.



대적의 나라 일본 땅, 박다진 목도(博多津木島)에서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박제상, 공의 의관(유해)마저 길바닥에 버려진 채 며칠 동안 비를 맞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철복이 달려와 의관을 수습해서 근처 양지에 묻고 자신은 자결했다고 합니다.

        

남다른 용기와 지략으로 충절을 다하고 순국한 박제상, 그러나 그분에게는 그런 충성심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천체의 이치를 깨달은 공은 인류의 기원은 파미르고원이 발원지이며, 그곳 마고성에서부터 출발해 만주는 물론 지구상의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갔으며, 우리 쪽으로는 궁희, 황궁, 유인, 한인, 한웅을 거쳐서 단군에 이르고 있음이 밝혀졌음을 <부도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기 57세라면 평생동안 연구하고 쌓아온 결과를 세상에 내놓을 중요한 시기입니다. 짐작하건대 당시 박제상공의 이념 속에는 천문학이나 인류의 기원을 좀 더 근접해서 풀어헤친 제 2의 부도지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거나, 인류의 행복과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필요한 논어 이상의 경전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다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박제상공의 순절은 우리는 물론 전 세계 인류의 커다란 손실이며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박제상공을 충신이라고만 말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충신이며 천문학자요 철학자'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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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

서울신문사 인터넷문학상에 장편소설 ‘살아있는 전설’ 당선 (문단 데뷔),

KBS노동문화제 문학 부문에 ‘침묵을 깨는 소리’ 금상,

관악신문사 신춘문예 '달동네 사람들의 하루' 당선.

현재 7편의 저서가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정책개발위원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계간문예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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