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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료10 울주 두동면에 위치한 치산서원의 복원비문 풀어쓰다
작성자 박중열 작성일 2013.05.27
파일 치신서원복원기(2).hwp 조회수 1831

287번 아래 비문의 해석임

 

충렬공 관설당 박제상 영해박씨 시조님과 그 부인의 충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치산서원복원에 노력하신 충렬공유적복원추진위원회의 관계관님께 감사드리며 치산서원 입구 홍교 바로 후면의 치산서원 복원 비석에는 치산서원이 복원되기까지 과정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으나 난해한 낱말이 많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난해한 낱말을 풀어써 보았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鵄山書院復元碑(치산서원복원비)

忠義(충의)를 崇尙(숭상)하는 國家(국가)는 방토(邦土:국가의 영토)를 보장(保障) 하고 孝友(효우: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를 이행(履行)하는 가정(家庭)은 그 문호(門戶)가 영원(永遠)하다. 그러므로 卓異(탁이)한 충효(忠孝)를 실천(實踐)한 者는 국가가 이를 褒獎(포장:칭찬하여 장려함) 하여 後世(후세)의 模範(모범)으로 삼는 것이 自古典例(자고전례:옛부터가르침의 예)이다. 忠烈公(충렬공) 朴堤上(박제상)은 新羅(신라) 訥祗王時(눌지왕시) 忠臣(충신)이다. 君國(군국:임금과 국가)을 위하여 身命(신명)의 危險(위험)을 무릅쓰고 倭國(왜국)으로 들어가 질유중(質留中:인질로 붙잡혀있던 중에)에 있던 王弟(왕제)를 救出(구출)하고 自身(자신)은 倭酋(왜추:일본야만인)에게 拘禁(구금)되어 온갖 威脅(위협)을 받았으나 끝내 屈(굴)하지 않고 節操(절조:절개와지조)를 지키며 抗辯(항변)하다가 마침내 死節(사절)했다. 夫人(부인) 金郊金氏(금교김씨)는 鵄述嶺(치술령)에 올라 東海(동해)를 바라보며 望待(망대:돌아오기를 기다리다)하다가 이 소식(消息)을 듣고 그 자리에서 氣盡(기진:기운이 다하여 힘이 없어짐)하여 化石(화석)이 되고 二女 또한 孝死(효사:효도심에 목숨을 버림)하니 壯(장)하게도 吾邦最初(오방최초:이나라 최초의 귀한일)의 一家(일가)삼강(三綱)을 樹立(수립)했다. 公(공)의 事蹟(사적:이룩한 발자취)은 三國史記(삼국사기)三國遺事(삼국유사)三綱行實圖(삼강행실도)五倫行實圖(오륜행실도)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슬람)東京雜記(동경잡기)蔚山邑誌(울산읍지)등에 詳載(상재: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하므로 以次(이차:이후 모든 설명을)를 省略(생략)한다. 朝鮮肅宗末(조선숙종말)에 公(공)의 忠節(충절)을 追慕(추모)한 慶州(경주) 儒林(유림)들이 神光飛鵄山(신광비치산:신의 서광이 비춘 치산)아래 鵄慕祠(치모사)를 세우고 봉향(奉享)하다가 영조신유(英祖辛酉)에 邦禁(방금:나라에서 금하다)으로 毁撤(훼철:헐어서 철거하다)되고 位攀(위반)은 陵近(능근:무덤 근처)에 있는 法廣寺(법광사)로 옮겨 安置(안치)했다. 그후 憲宗(헌종) 丙午(병오년)에 公의 後孫(후손)들이 鵄述嶺(치술령) 隱乙菴(은을암)으로 移安(이안:잘 옮김)하고 翌年(익년:다음해)에 鄕儒(향유:고향유림)들과 함께 사우(祠宇)를 建立하여 位幣(위폐)를 奉安(봉안)하고 鵄山書院(치산서원)이라 揭號(게호:추켜올려부르다)했다. 그러나 高宗戊辰(고종무진)에 이르러 다시 書院撤令(서원철령:서원철폐령)으로 다시 撤去(철거)되니 오래동안 矜式(긍식:엄숙하고 장엄하게 드러내다)하던 忠義(충의)의 事蹟(사적:일의 발자취)이 一朝(일조:하루아침에)에 廢虛化(패허화)되어 뜻있는 인사(人士)들로 하여금 咨難(자난:근심과 탄식)을 不禁(불금:금할 수 없게)케 하였다. 그러나 忠孝烈(충효열)의 偉大한 자취가 어찌 영원히 泯沒(민몰:자취가 아주 없어짐)되겠는가 드디어 1978年 3月 吾鄕(오향:나의고향)의 有志者(유지자: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여러분이 상응하여 忠烈公復元推進委員會(충렬공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結成)하고 各方要路(각방요로)에 建議한 結果 1987年 2月 本郡에서는 韓國敎員大學교(한국교원대학교)에 遺蹟調査(유적조사)를 依賴(의뢰)하게 되었고 同博物館(동박물관)에서는 黃壽永 博士(황수영박사)를 指導委員으로 鄭永鎬博士(정영호박사)를 責任委員(책임위원)으로 調査團(조사단)을 結成(결성)하여 四次(사차)에 걸친 實踏調査(실답조사)를 實施(실시)하고 報告書(보고서)를 作成(작성)國家的(국가적)次元(차원)에서의 遺族保存策(유족보존책)과 敎育的次元(교육적차원)에서의 鵄山書院復元(치산서원복원)을 提言(제언)했다. 이에따라 一九八八年 十二月 地方文化財(지방문화재)第90號를 指定되고 卽年부터 前後蔚山郡守(전후울산군수)金明奎(김명규)金鎭伯(김진백)이 國會議員,金泰鎬,朴進球,金埰謙(국회의원,김태호,박진구,김채겸)등 이 協助(협조)로 積極的(적극적)인 復元(복원) 計劃(계획)을 樹立(수립)하고 工事(공사)를 進行(진행)하여 드디어 一九九二년 三月에 祠宇 講堂 齋舍 三門等(사우:신주를 모셔놓은집/ 강당: 강의,강연,의식등 행사를 치루는 건물이나 방./ 재사:유생들의 기숙사 등)과 神母祠(신모사) 쌍정려(雙旌閭)를 竣工(준공)하고 다시 鵄山祠(치산사)로 揭號(게호)하여 享禮(향례)를 奉行(봉행)했다. 이어 附屬建物(부속건물)을 完成(완성)하고 造景(조경)과 丹粧(단장)을 實施(실시)하여 虹橋(홍교:무지게다리)를 新築(신축)하여 景觀(경관)을 一新(일신)하니 公의 英靈(영령:죽은이의혼백)이 再臨(재림)하여 宛然(완연)히 陟降(척강:혹은 하늘로 올라가고 혹은 인간세계로 내려옴)하는것 같다. 이것이 어찌 遇然(우연)한 일이겠는가? 公 의 萬古忠節(만고충절)이 千五百年이 지난 오늘에도 더욱 빛을 얻어 喪失(상실)된 人倫(인륜)과 頹敗(퇴패)한 道德(도덕)을 回復(회복)하는데 크나큰 敎訓(교훈)을 주려는 天意(천의:하늘의뜻)의 作用(작용)이 아니겠는가? 이에 本會는 本復元事業(본복원사업)의 顚末(전말)을 밝히고 物心兩面(물심양면:물질과정신)으로 支援해 주신 諸賢(제현:여러 사람들을 정중히 높여 이르는 말)의 功勞(공로)를 致賀(치하:감사의표시)하여 後世(후세)에 전하고저 이 碑石(비석)을 세운다.

一九九三年 二月 日

忠烈公遺蹟復元推進委員會


상기글은 비석문에 쓰인 옥고를 풀어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낱말을 풀이 함에 저의 주관적인 견해도 내포되어 다소 원문상의 의미와 해석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읍니다. 이해하여 주시고 좋은 자료가 계신 분은 연락주세요. 운곡드림.

http://cafe.daum.net/qwd5323운곡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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