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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궁금합니다. 국장님
작성자 사무국장 작성일 2013.11.21
파일 조회수 1492

다시 답변드리겠습니다.

 

 

字殷卿官至龍瀛見麗運將衰自寧海移居于福州臨河北岐山下只失於村墓安東臨北三山梧里峴卯坐配貞夫人坡平尹氏父判書墓上下封는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字殷卿 ()는 은경이다

官至龍瀛 벼슬이 용영에 이르렀다.

見麗運將衰 고려의 운세가 장차 쇠할 것을 보고서

自寧海 移居 于福州 臨河北 岐山下 只失於村 영해로부터(에서) 복주(지금의 안동) 임하북쪽 기산의 아래 지실어촌에 옮겨살았다.

墓安東臨北三山梧里峴卯坐 묘는 안동 임북 삼산오리 언덕에 있는데 좌향은 묘좌이다

配貞夫人坡平尹氏父判書墓上下封 정부인인 파평윤씨(모친, 판서공의 따님)의 묘와 위 아래로 있다

 

궁금해하신 官至龍瀛은 벼슬이 용영의 책임자에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용영은 龍灣으로 의주의 옛 지명으로 보입니다. 의주는 공민왕 15(1366)에 목()으로 승격시켰으며 18(1369)에 만호부가 설치되었으므로 의주목사나 의주 만호정도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첨부하신 김도화의 묘갈명을 보면 운봉현감을 하시고 계시다가 벼슬을 버리신 것으로 보면 아무래도 의주목사와는 격이 맞지 않아 의주 만호정도가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사실을 증명하기에 부족한 기록만으로는 구체적으로 특정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참고로 府使는 고려시대에 의주방어사가 설치되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부사나 목사가 방어사를 겸직하는 경우도 있었고, 조선시대 의주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 도호부사를 줄여서 부사라 칭하기도 하였으므로 여전히 거기에 근거하여 의주부사라 하였다면 의주부사의 명칭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의견을 붙인다면 조선 건국 후 의리를 지키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안동에 은거하여 동네이름까지 기사리(벼슬을 버리고 숨은 분이 사는 마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로 바뀌 것을 보면 관직의 높낮이와 관련없이 그 충절을 높이 평가할 만한 행실을 갖추신 분인 것 같습니다.

 

진한 글씨의 산소 관련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고요 용영이 용만의 여부는 추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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