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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영두 전임회장님 송덕비 찬문입니다. 최종수정본입니다.
작성자 사무국장 작성일 2010.10.05
파일 조회수 9175

大光朴永斗會長頌德碑

寧海朴氏大宗會 朴永斗 前任會長은 新羅의 萬古忠臣 觀雪堂 諱 堤上의 五十八世孫이요 高麗의 壁上功臣 禮原君 諱 命天의 三十二世孫이고 不事二君의 高麗末忠臣 遯翁公 諱 球의 十九世孫이다.字는 崇正이요 雅號는 大光으로 西紀一九二二年壬戌 七月 七日에 京畿道 楊平에서 父親 靜齊 斌鉉과 母親 原州元氏의 次男으로 出生하였다.日帝暗黑時代에 楊平農業學校를 卒業한뒤 一九四二年에는 弱冠 스물한살에 議政府 楊州등 京畿道內 여러 곳과 京城을 오고 가는 運輸事業에 投身 事業家의 眼目과 識見 그리고 大望의 꿈을 키워왔다.一九四五年乙酉 八月 日帝의 敗亡으로 祖國이 光復되고 美軍政三年과 一九四八年戊子 八月 新生大韓民國政府가 樹立된 뒤 過渡期의 渦中에도 初志一貫하여 起業에 專念邁進하였다.一九五0年庚寅 六月 未曾有의 六․二五 戰亂으로 온 나라가 焦土化되어 事業이 한 때 困境에 處하였으나 一九五三年癸巳 七月 休戰이 된 뒤에는 數年間 刻苦의 努力 끝에 서울 淸涼里와 京畿道 德沼를 疏通하는 서울京畿一圓 屈指의 湖水旅客運輸(株)를 創設 待望의 代表理事가 되었다.事業이 日就月將하자 朴永斗社長은 티끌모아 泰山이 된다는 信條를 몸소 實踐하는 自手成家型企業家로 成長하였다.그 實證이 바로 朴永斗社長의 勤儉生活律格으로 蓄積된 節約治富型企業家財産이며 그렇게 모은 資産이 뒷날 先祖遺蹟宣揚保存事業에 많은 資金을 아낌없이 贊助한 動機와 財源이 되었다.一九七三年癸丑  朴永斗社長이 大宗會會長에 就任하므로서 韓末과 日帝暗黑時代의 受難을 겪는 동안 宗約所看板으로 僅僅이 命脈을 이어왔던 虛弱한 宗中組織을 一躍 甲族大宗會로 胎動跳躍하는 礎石이 되었다.三十四年間 寧海朴氏大宗會會長의 重責을 맡으면서 祖上의 蔭德으로 벌어들인 財産은 祖上報恩을 爲해 쓰이도록 返還한다는 一念으로 崇祖尙門宣揚을 爲해  朴永斗前任會長이 남긴 빛나는 功績은 一九七五年乙卯 八月 京畿道楊平郡楊東面雙鶴里에 私費로 禮原君 諱 命天 三代侍中公 諱 世通 諱 洪茂 諱 減 遯翁公 諱 球 등 中祖近祖 여덟 분을 配享하기 爲해 崇禮祠를 創建하였고 一九七六年丙辰 九月에는 慶尙北道 盈德郡 居無役里에 三代侍中公 神道碑를 建立하였으며 一九七七年丁巳 十月에는 江原道鐵原郡近南面沙谷里에 있는 九隱祠 重建工事를 贊助 竣工하였고 一九八0年庚申 四月에는 洋裝版 總 一一三一面의 寧海朴氏世鑑 上․下券을 編纂 發刊 全國의門中에 配布하였고 一九八四年甲子 七月부터 一九八五年乙酉 一月에 걸처 楊平郡에 있는 朴永斗會長 私有 四十餘筆地 總二萬五千餘坪의 田畓 및 林野를 宗中位土로 快擲하였고 一九八七年丁卯 十月에는 慶尙北道 寧海 居無役里에 있는 雲溪書院과 鳳松亭重建․復元工事를 贊助 支援하였으며 같은 해 十一月에는 總六券 一帙로 된 總四三五八面의 寧海朴氏大同譜筆寫本 一千五百帙을 編纂刊行 配布하였으며 一九九一年辛未 十一月에는 慶尙南道 蔚山에 있는 鵄山書院重建에 따른 五百七十三坪의 林野를 位土로 提供하는 등 歷代祖先遺蹟保存을 통한 崇祖精神涵養과 이를 바탕으로 大宗會 發展을 爲해 朴永斗前任會長이 이룩한 功德의 크기는 測量할 길이 없다. 八十六年에 걸친 事業家的 生涯를 追慕하면서 朴永斗前任大宗會會長이 生前에 이룩한 功德을 기리고 遺志를 받들어 寧海朴氏大宗會 宗員一同은 後任 朴城秀會長을 主軸으로 朴柱星副會長의 恪別한 贊助와 宗中 모두의 뜻을 모아 朴重仁 大宗會顧問이 撰文한 頌德碑를 이 곳 崇禮祠 階下에 세웠다.

                 二0一0年庚寅 十一月 七日


寧海朴氏大宗會會長  朴 城 秀  建立

寧海朴氏大宗會顧問  朴 重 仁  撰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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